오래된 고전을 읽다 보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천재가 쓴 작품이라는데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명백한 여성 차별적 발언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특정 계급이나 인종에 대한 비하와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서사 속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많은 독자가 혼란에 빠집니다. "이런 반인권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과연 명작이라고 찬사해도 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드는 것이죠.
저 역시 처음 비평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고전 속 구시대적 가치관을 발견하면 단칼에 "시대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라며 감정적인 비판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차원적인 분노는 글의 깊이를 더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품이 가진 진짜 가치마저 가려버리는 실수가 되곤 합니다. 과거의 텍스트를 현대의 칼날로 무 자르듯 베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적 한계를 날카롭고 공정하게 짚어내는 '입체적 비판 기술'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텍스트를 가두는 감옥, '역사적 맥락' 먼저 복원하기
작품을 정당하게 비판하기 위한 첫걸음은, 그 작가가 숨 쉬고 글을 쓰던 시대의 공기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인권, 평등, 자유의 개념이 인류 역사상 당연히 존재해 온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던 16세기나 조지 오웰이 '1984'를 쓰던 20세기 중반의 상식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따라서 비평을 시작할 때는 작가를 무조건 옹호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그가 왜 그런 문장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시대의 한계선'을 명확히 그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시 이탈리아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시기였기에,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도덕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처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시각이 그 시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 줄 때, 우리의 비평은 단순한 감정 배설이 아니라 객관성을 확보한 논리적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무조건적 수용'과 '맹목적 비난' 사이의 균형 잡기
과거와 현재의 충돌을 다룰 때 서평 작성자들이 가장 자주 빠지는 양극단의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전이니까 다 뜻이 있겠지"라며 구시대적 편견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기준으로 보니 불량 도서"라며 작품 전체의 가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태도입니다.
훌륭한 비평가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사람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문장 구조는 '양도 논법'의 형태를 띱니다.
먼저 작품이 당대에 이룩한 혁신적인 성과(예: 인간 소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등)를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 후 문단을 바꾸어 "그러나(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환어를 던지며 현대적 시각에서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입니다. "카뮈가 '이방인'에서 보여준 실존주의적 사유는 위대하지만, 작품 속에서 이름도 없이 도구처럼 소비되는 아랍인의 시선은 제국주의적 시차를 고스란히 노출한다"라는 식의 접근입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서술은 독자에게 '이 작성자는 텍스트를 넓고 깊게 조망하고 있구나'라는 강한 신뢰감을 줍니다.
3. 과거의 과오를 현대의 '반면교사'로 치환하는 문장력
비평의 마지막 단계는 과거의 한계를 단지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를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수백 년 전 작가의 편견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가치 있는 비평은 "과연 우리는 그 작가보다 당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저지른 시대적 오류를 오늘날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눈몲이나 무감각함과 연결해 보세요.
만약 과거 고전 속에서 특정 계층을 배제하는 시각을 발견했다면, 이를 비판하는 동시에 "오늘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효율성 중심의 현대 사회가 은밀하게 배제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라며 논의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공간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놓아줄 때, 과거의 고전은 박물관의 박제에서 걸어 나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질문을 던지는 실존적인 텍스트로 부활하게 됩니다.
[정리하며] 거인의 어깨 위에서 거인을 넘어서는 일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천재들이 쓴 고전을 읽고 비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쌓아 올린 역사적 경험과 반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거인을 조롱하는 일이 아니라,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들이 보지 못했던 더 먼 지평을 바라보는 성숙한 지적 행위입니다. 시대적 한계라는 안개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발굴해 내고, 동시에 그 안개 자체를 냉철하게 분석해 내는 당신의 균형 잡힌 문장들은 블로그의 품격을 한 층 더 높여줄 것입니다.
핵심 요약
과거의 고전을 비평할 때는 현대의 가치관으로 무조건 재단하기 전에, 작가가 처했던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패러다임을 먼저 복원하여 객관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무비판적인 맹신과 무조건적인 거부라는 양극단의 태도를 지양하고, 작품의 문학적/철학적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시대적 한계를 명확히 짚어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고전의 오류나 편견을 단순한 지적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무감각함이나 모순을 비추는 반면교사로 확장할 때 비평의 깊이가 완성됩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14편에서는 나 혼자만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하나의 작품을 두고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다양한 평론가들의 시각과 팽팽한 논쟁을 내 서평 속에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녹여내는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댓글 유도 질문
여러분은 평소 고전을 읽다가 현대의 상식과 맞지 않는 구시대적 표현이나 차별적인 내용을 발견했을 때, 책을 덮어버리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시대를 감안하고 끝까지 읽으시는 편이신가요? 여러분의 솔직한 독서 경험을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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